>
본문 바로가기
여가 활동

전통 민속놀이 가마싸움

by 안단테 콘 모토 2023. 2. 5.
반응형

하회마을의 유명한 놀이

추석 연휴 기간 동안 가족들과 경상북도 안동시에 위치한 하회마을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우연히 보게 된 민속놀이 ‘가마싸움’이라는 놀이였다. 현재는 사라진 전통문화이지만 과거 조상들은 마을 주민들끼리 힘을 겨루기 위한 목적으로 종종 열렸다고 한다. 치열한 싸움 도중 상대방의 가마를 부수게 되면 승리할 수 있었는데, 만약 부서진 가마를 수리하지 못하게 되면 패배했다고 한다. 이러한 유래를 가진 가마싸움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2010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방한 당시 경북 안동 하회마을에서의 기념행사 때 재현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가마싸움의 기원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사라진 전통놀이이지만 과거 고려시대 때까지만 해도 어린이날이면 전국 곳곳에서 아이들끼리 모여 한바탕 큰 놀이판을 벌였다고 한다. 바로 이름도 생소한 ‘가마싸움’이라는 놀이다. 당시엔 왕세자였던 충선왕이 원나라에 머물면서 현지인들로부터 배워온 놀이였다. 이후 조선 중기 무렵부터는 궁중행사에서도 재현되며 널리 퍼지게 되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시대 때 일본식 문화말살정책으로 인해 강제 중단된 뒤 오늘날까지 명맥이 끊겨버렸다. 다행히 지난 2015년 10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쇠철강 철의 문화사” 에서 일부 유물이 전시되면서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 여기서 잠깐 의문점 하나 짚고 넘어가자. 앞서 언급했던 대로 옛날 옛적만 하더라도 어린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도 즐겨하던 놀이였는데 말이다. 실제로 인터넷상에선 이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일각에선 군사정권시절 정권유지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금지시켰다는 주장에서부터 산업화시기 급격한 도시화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 때문에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이것이 진짜 역사적 사실인지 아니면 그저 지어낸 이야기일 뿐인지 궁금해하기도 한다. 따라서 필자는 실제 있었던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각종 문헌자료 및 관련 논문 자료들을 조사해 보았다.

먼저 가마싸움 유래에 대해 알아보자.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신라 진흥왕(540~576) 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행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각 지역별로 편을 나눠 상대편 기마병을 공격했는데 승패 여부에 따라 진 쪽 병사에게는 사형 또는 귀양형이 내려졌다고 한다. 만약 이긴다면 승리팀 전원에게 상을 주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내용은 중국 당나라 역사서인 구당서에도 나와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고구려 벽화나 고분벽화 그리고 통일신라시대 유적지 발굴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토기 파편 등을 통해 확인되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오랜 세월 이어져오던 풍습이 한순간에 사라지게 된 계기는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부터라는 설이 유력하다. 대한제국 군대 해산령이 내려진 후 군인들이 의병활동에 가담하자 일본군이 대대적인 탄압에 나섰는데 이때 민간인들 사이에서도 항일운동이 확산되었다. 그러자 정부차원에서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일부러 없앴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전쟁통에 무기 부족으로 어쩔 수 없이 폐지되었을 거라는 추측도 있다. 어쨌든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지만 언젠가 복원되어 다시금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안동의 명물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는 매년 정월 대보름날 마을 대항 민속놀이인 ‘가마싸움’이 펼쳐진다. 한 팀당 10명씩 총 5개 팀이 참여하여 상대편 진영 깃발을 먼저 빼앗으면 승리하는 방식인데, 각 팀마다 대장 격인 머리꾼 2명이 선봉장 역할을 한다. 이때 양편 모두 서로 밀치고 당기며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는데, 이를 통해 상대편의 사기를 꺾고 승부욕을 자극함으로써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싸움 도중 넘어진 사람들은 재빨리 일어나 대열을 정비하는데, 만약 일어나지 못하면 진 것으로 간주된다. 또한 승패가 가려지면 이긴 편 선수들끼리 모여 자축연을 벌이고, 패한 편은 풍물패 장단에 맞춰 춤을 추며 위로하며 화합의 장을 마련한다.

반응형

댓글